[사설]신부님, 문정현 신부님
그에게는 가톨릭 사제라는 신분에는 어울리지 않게 오랫동안 ‘깡패’라는 별명이 붙어다녔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도 자랑스러워했다. 그가 가두시위·농성 등 거리에서 ‘깡패짓’을 하며 포근하게 감싸려 했던 이들은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빨갱이’로 몰린 양심수 등 억눌리고 가난한 이웃들이었기 때문이다.
칠순을 맞은 ‘거리의 사제’ 문정현 신부가 24일 은퇴했다. 문신부는 42년 사제생활의 꼭 절반인 21년을 보낸 전북 익산의 정신지체아 시설인 ‘작은 자매의 집’에서 은퇴 미사를 집전한 뒤 “신부님 제발 가지 마세요”라고 울부짖는 아이들을 뒤로 한 채 차마 떨어지지 않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이날 ‘작은 자매의 집’에 모인 사람들은 이별의 슬픔에 모두가 울었다. 문신부는 아이들의 두 볼을 쓰다듬고 꼭 안아주며 울었다. 아이들은 문신부의 옷깃을 잡아 끌며 울었다. 거리의 투사로 나서면 호랑이처럼 무서운 문신부였지만 아이들에게는 길고 흰 수염을 잡아당기는 버릇없는 장난을 쳐도 그저 ‘허허허’ 웃기만 하는 인자한 할아버지였을 뿐이다. 참석자 대표로 송사를 읽던 송연정 생활재활교사는 “이렇게 빨리 이별이 올 줄이야…”라는 대목에서 말을 잇지 못한 채 눈물을 흘렸고, 또다시 이곳저곳에서 울음이 터져나왔다.
전북 장수군 장계본당 주임신부였던 1986년, 문신부는 일하러 나간 부모가 감나무에 묶어놓은 어느 아이를 발견한 뒤 창고를 개조해 같이 살기 시작했다. ‘작은 자매의 집’은 그렇게 출발했고, 아이들의 영혼과 육신에 문신부의 헌신적인 사랑이 스며들면서 정신지체아 보금자리로 자리잡았다.
평생을 낮은 곳에서만 머물러온 문신부의 삶이 지금 이 순간 더욱 우뚝한 존재감으로 다가오는 까닭은 종교라는 이름으로, 성직자의 권능이라는 허울로 이뤄지는 것들이 너무나 속악(俗惡)스럽고 천박하기 때문이다. 성조기를 흔들며 북녘을 향해 저주를 퍼붓고, 천문학적 액수의 교회 재산을 대대손손 물려주며, 교회를 특정 정당 대선후보의 선거대책본부로 여기는 듯한 언동 등 하나하나 열거하려면 숨이 차다.
75년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 당한 이들의 시신을 지키려다 무릎 연골이 파열돼 5급 장애인 판정을 받은 문신부는 늘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 할 정도로 몸이 불편하다.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수십년 동안 동안 거리를 떠돌았던 칠순의 노사제를 위해 우리 사회가 할 일은 분명하다. 그가 또다시 나설 필요가 없도록 정의와 평화가 이 땅 곳곳에 넘쳐 흐르도록 모두가 뜻을 모으고 힘을 합쳐야 한다. 문신부는 이제 편히 쉴 충분한 자격이 있다. 신부님, 우리들의 문정현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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